트렌드레포트

화장품도 리필하는 시대

화장품 리필 용기와 리필제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화장품도 리필하는 시대, 리필 스킨케어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고급스러운 유리병에 담긴 크림을 다 사용했는데 용기는 멀쩡합니다. 예전이라면 통째로 버리고 새 제품을 샀겠지만, 이제는 안쪽 카트리지만 꺼내 새 내용물로 교체하는 화장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스킨케어뿐 아니라 쿠션, 립스틱, 향수까지 ‘리필 가능한 뷰티’가 하나의 패키징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품 용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리필 화장품은 항상 친환경적일까요?

리필과 재사용은 일회용 포장재 사용을 줄일 가능성이 있지만, ‘리필’이라는 단어 자체가 환경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본품 용기를 실제로 몇 번 재사용하는지, 리필 포장에 얼마나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지, 재질과 운송·폐기 방식은 어떤지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화장품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때도 원료에서 제조·유통·사용·폐기까지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의 기본적인 접근입니다. 

왜 화장품 회사들은 리필 용기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화장품은 내용물만큼 패키지가 중요한 산업입니다. 특히 프리미엄 화장품에서는 두꺼운 유리와 플라스틱, 금속 장식, 펌프와 뚜껑 등 여러 소재가 결합된 용기가 사용됩니다. 내용물을 모두 사용하면 아직 기능하는 용기까지 한꺼번에 폐기되는 구조입니다. 리필 시스템은 이 구조를 바꿉니다. 처음에는 내구성이 있는 본체를 구입하고 이후에는 내용물이 담긴 카트리지나 파우치만 교체해 본체의 사용기간을 늘리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향은 화장품 업계만의 유행도 아닙니다. 유럽연합의 새로운 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PPWR)은 포장 폐기물을 줄이고 재사용·리필을 확대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규정은 2025년 2월 발효됐으며 2026년 중반부터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리필하면 정말 환경 부담이 줄어들까?

가능성은 있습니다. 샴푸 용기를 대상으로 펌프형 본품을 매번 새로 사용하는 방식과 리필 파우치를 사용하는 방식을 비교한 생애주기평가(LCA) 연구에서는 리필 방식의 전체 환경 영향이 약 20% 낮게 평가됐습니다. 플라스틱 사용 감소에 따른 석유 자원과 이산화탄소 등의 감소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장품 패키지를 대상으로 한 다른 생애주기평가에서도 재사용 가능한 포장의 장점이 확인됐습니다. 다만 결과는 용기의 재질과 구조, 재사용 횟수 및 실제 재활용 여부 등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즉 중요한 질문은 “리필 제품인가?”가 아니라 “이 포장 시스템 전체가 기존 방식보다 실제 자원 사용을 줄이는가?”입니다. 무거운 유리병을 한 번만 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리필 화장품에는 한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본품을 여러 번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사용을 전제로 만든 본품은 오히려 일회용 제품보다 튼튼하고 무겁게 제작될 수 있습니다. 두꺼운 유리, 금속 장식, 복잡한 펌프 구조가 들어간다면 처음 용기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급 리필 크림을 구입한 뒤 첫 번째 내용물만 사용하고 다른 제품으로 바꾼다면 본품을 오래 재사용하도록 설계한 의미가 줄어듭니다. 2022년 화장품 포장의 재사용성과 재활용성을 비교한 LCA 연구에서도 재사용 횟수가 환경 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평생 쓰는 용기’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패키지보다 소비자가 실제로 다시 채워 사용하는 구조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리필 파우치도 결국 쓰레기 아닌가?

맞습니다. 리필 제품 역시 포장이 필요합니다. 내용물을 담아 운송하고 오염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파우치나 카트리지 자체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리필을 구매할 때마다 새로운 폐기물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폐기물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기존 본품을 다시 생산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적은 자원과 포장을 사용하는가입니다. 최근 플라스틱 포장 연구에서도 포장재의 양을 줄이는 ‘dematerialisation’과 재생 원료 사용이 환경 영향을 낮추는 중요한 전략으로 평가됐습니다.  2026년 발표된 리필·재사용 시스템 LCA 연구에서도 다섯 번 리필하는 시나리오에서 포장 관련 환경 영향이 약 60% 감소했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리필 파우치에 새 플라스틱 원료가 계속 사용될 경우 순환성 측면에서 상충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연구는 세제 포장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화장품에 같은 숫자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리필 횟수와 리필 포장 자체의 재질까지 봐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유리 용기라면 플라스틱보다 무조건 친환경적일까?

이 역시 단순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환경 영향을 평가하려면 소재 이름 하나가 아니라 원료 생산, 용기의 무게, 제조 과정, 운송 거리, 재사용 횟수와 실제 폐기 방식을 함께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벼운 플라스틱 용기는 화석연료 기반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운송 단계에서는 무거운 소재보다 부담이 낮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튼튼한 용기를 오랫동안 재사용한다면 처음 제조할 때 들어간 환경 부담을 여러 번의 사용에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친환경, 플라스틱=환경에 나쁨’이라는 공식보다 생애주기평가(Life Cycle Assessment)가 필요합니다. 2024년 플라스틱 화장품 패키지의 여러 친환경 전략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소재뿐 아니라 포장 경량화, 재생원료 비율, 제조 에너지와 폐기 단계 등을 함께 평가했습니다. 

화장품 리필에서는 ‘위생’도 중요

스킨케어는 음식처럼 섭취하는 제품은 아니지만 피부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입니다. 따라서 친환경성 때문에 제품의 안전성이 희생되어서는 안 됩니다. 화장품은 제조와 보관 과정에서 미생물 오염을 방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미국 FDA의 2026년 화장품 제조시설 검사 지침에서도 비위생적인 제조 환경, 부적절한 보관, 포장 설계의 결함이나 효과적이지 않은 보존 시스템 등이 화장품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제조사가 처음부터 교체형으로 설계한 밀폐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것과, 다 쓴 크림통에 소비자가 임의로 다른 제품을 덜어 넣는 것은 같은 ‘리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손가락이 반복해서 들어가는 용기나 입구가 넓은 용기를 재사용한다면 제조사가 제시한 세척·교체 방법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은 화장품 위에 새 제품을 부어도 될까?

권하기 어렵습니다. 리필 시스템은 제조사가 용기 구조와 내용물의 안정성을 고려해 설계한 방법대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기존 내용물이 남아 있는 용기에 새로운 제품을 계속 보충하거나 서로 다른 화장품을 섞으면 보존 시스템과 제품 안정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또 빈 화장품 병이 아깝다고 해서 세척한 뒤 전혀 다른 화장품을 옮겨 담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용기 재질과 펌프 구조가 새 제품과 맞지 않을 수 있고 세척 후 남은 수분이나 오염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재사용한다’와 ‘화장품을 임의로 소분한다’는 다른 문제입니다.

친환경 문구보다 시스템을 볼것

리필 화장품을 고를 때는 패키지에 적힌 ‘eco’나 ‘sustainable’이라는 단어보다 시스템을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본품 용기를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는지, 리필 카트리지가 본품보다 실질적으로 가벼운지, 리필 포장의 재질과 분리배출 방법이 안내돼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무엇보다 내가 실제로 이 제품을 반복해서 사용할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정교한 리필 시스템이라도 본품을 한 번 사용하고 버린다면 재사용의 환경적 장점을 충분히 살리기 어렵습니다.

‘예쁜 화장품 용기’ 기준의 변화

과거 프리미엄 화장품의 패키지는 얼마나 묵직하고 화려한지가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내용물을 다 사용한 뒤 이 용기는 어떻게 되는가?” EU를 비롯한 규제 환경도 포장 폐기물을 줄이고 재사용과 리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고급 화장품 패키지는 단순히 버리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용기가 아니라 실제로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용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리필이라고 쓰여 있다고 끝이 아닙니다 리필 화장품은 뷰티 산업의 포장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실제 LCA 연구에서도 조건에 따라 재사용·리필 방식이 일회용 포장보다 환경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리필 가능’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친환경 제품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본품을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지, 리필 포장은 얼마나 가벼운지, 어떤 재질을 사용하는지, 운송과 폐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위생적으로 반복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뷰티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계속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미 산 것을 더 오래 사용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참고자료: European Commission.U.S. FDA.
최초 발행:  |  최종 수정: